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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여고생 가수’였다. 그리고 한 때는 거듭된 시련 때문에 ‘불운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대중에게 잊히는 듯 했으나 MBC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통해 ‘고음 여신’으로 부활했다. 그러는 사이 20년은 훌쩍 지나갔다. 가수 양파의 이름은 이제 대중문화, 특히 가요의 주 소비층이 된 10대와 20대에게는 조금 낯설다. 그는 이제 어떤 이름으로 불려야 할까.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에서 양파의 다음 행보를 예상할 수밖에 없다. 그는 치유를 노래하고, 일상을 노래하고, 공감을 노래하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양파는 지난 8일 자신의 이름으로는 3년9개월 만에 ‘끌림’이라는 제목의 싱글을 들고 나섰다. 그동안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기획 음반이나 유명 프로듀서들의 프로젝트 음반 그리고 드라마나 공연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에 등장했던 그가 ‘양파’라는 이름을 오롯이 들고 등장한 것은 2014년 3월 이후 처음이다. 그는 인터뷰가 있던 날도 마지막 믹싱(Mixing·반주와 노래음성을 조합해 음원을 만드는 일) 작업에 한창이라면서 노래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번 싱글은 매월 새 노래가 나오면서 약 11년 만의 정규 6집 앨범으로 가는 초석이 된다.

“‘공기 반 소리 반’ 식은 아니지만 공기를 가창에 썼고요. 가사를 전달하는 가창이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가창을 하고자 했어요. 사실 음역을 올리는 가창으로 보면 더 잘 된 것도 있거든요. 하지만 제가 고른 건 다소 못 부르더라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가창이었기 때문이에요. 소리에도 신경을 썼어요. 해외 유명 뮤지션들의 악기를 연주하셨던 분이 참여했고요, 믹싱도 매번 다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계절에 어울리는 쓸쓸함을 담고 있고요. ‘누가 높이 올라가나’식의 지르기 없고요….”

그는 인터뷰 초입부터 ‘끌림’ 트랙에 쏟았던 노력을 되뇌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 하지만 양파가 가진 새 노래에 대한 애착은 남달라 보였다.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싱글이라는 점 그리고 그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고자 하는 마지막 달 공개됐다는 점,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그의 모습을 보이는 트랙이었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동안 음악 작업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결정장애’가 있어서 빨리 결과물을 내지 못했죠. 그 와중에 뮤지컬도 좋은 제안이 와서 했고요. 스스로 이 ‘끌림’이라는 노래를 정규 6집의 첫 곡으로 말하고 싶어요. 이건 정규를 꼭 내년에 내겠다는 저 스스로와의 다짐이기도 하고 한 곡 한 곡이 모두 좋아서 그냥 흘리기 아까워 택한 방식이기도 해요. 싱글을 계속 냈다가 모인 열 몇 곡을 모아서 정규로 담아낼 생각입니다.”

‘끌림’의 양파 창법은 그동안 ‘뽕끼(트로트의 감성이 충만한)’ ‘고음’ 등의 수식어로 점철돼 왔다. 하지만 이번 싱글에서는 한껏 긴장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감정에 몰입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사 역시 30대의 마지막을 지나고 있는 그가 할 법한 이야기로 구성됐다. 오랜만에 연락이 된 옛 연인과의 통화에서 설렘을 느끼고 다시 연애 당시의 감정을 떠올리는 노래를 부르는 양파는 그 역시 기분좋은 설렘을 안고 있는 표정이었다.

“이번 앨범을 만드는 마음가짐은 예전과는 달라진 것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 공감 또는 위로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실 20대까지는 모두가 꿈을 이룰 줄 알고 사는 거잖아요. 하지만 30대 후반이 되면서 꿈을 이뤘는지 아닌지, 스스로 열심히 살았는지 많은 생각에 빠지게 되는데 거기에 ‘나도 여기 이렇게 살고 있어’ ‘우리 그래도 잘 했잖아’하고 말을 건네고 싶었어요.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주변의 경험을 듣고 소설 <82년생 김지영> 등에서도 영감을 얻었죠. 제 6집은 삶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1997년 ‘애송이의 사랑’이 담긴 데뷔 앨범을 낸 양파는 정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지만 20대 초입에는 그렇게 완벽해보이고 싶고, 실력을 갖추고 싶어 악으로 일정에 임했다. 하지만 그 스스로가 많이 단단했기 때문일까. 이후 이어지는 소속사와의 갈등 그리고 길어지는 공백기에서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 스스로를 감싸고 있었던 단단함이 과연 아집이었는지 아니면 두려운 세상으로부터의 방어기제였는지 이제 서서히 생각의 가닥이 잡힐 만큼 그는 세월을 보냈다. 친분이 있던 작곡가 김도훈이 이끄는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고 한층 편안해진 마음으로 음악 그리고 대중을 만나고 있다.

“예전에는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하고 생각하기도 했죠. 지금은 ‘어쩌면 나의 잘못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공개된 부분만 보면 실패로 거듭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저만 어려운 상황을 겪은 건 아니잖아요. 더 힘든 분들도 많으시니까. 하지만 당시 왕성하던 열정이나 아이디어, 감성들이 사라진 건 참 억울하고 그 당시에 맞는 결과물을 못 낸 건 슬프긴 해요. 하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노래처럼 다 의미가 있겠죠.”

그는 앞으로 많은 음악적 도전을 통해 ‘양파’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일 생각이다. 위로는 양희은 등 선배들을 만나는 ‘디바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고, 아래로는 똑같이 ‘여고생 가수’로 불렸던 아이유 등 후배들의 작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장르와의 만남, 프로듀서와의 만남, 가수들과의 만남. 앞으로 펼쳐질 40대의 음악생활에 더 이룰 게 많다는 그의 표정은 더욱 더 설레 보였다. ‘불혹’의 여파는 없다. 오히려 약간 더 신이 나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양파’라는 이름이 너무 싫었어요. 사람에게 채소의 이름을 짓는다고 느꼈달까요. 하지만 이 원망의 대상이 된 이름이 늘 대중 곁에 있으면서 기억이 되는 이유가 되니까 지금은 너무 고마운 거예요. 그래서 ‘양파’ 같은 노래를 하는 가수였으면 해요. 까도 까도 새로운 매력이 나오는 가수요. 굳이 ‘발라드의 여왕’이 되지 않더라도 문 열리면 들리는, 시간 속에서 매번 새롭고 매력이 있는 누군가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