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파(본명 이은진)가 뮤지컬 배우로 대중 앞에 섰다. 휘트니 휴스턴,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보디가드'에서 여주인공 레이첼 마론을 연기한다.
양파의 음악 인생에서 휘트니 휴스턴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중학생 이은진은 첫 오디션에서 'I'll always love you'를 불렀고, 이 곡은 지금의 가수 양파를 있게했다.
뮤지컬 배우로서 양파의 선택은 영리했다. '보디가드'는 극보다는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에 더 중점을 둔 공연이다. 양파는 무대 위에서 그토록 선망했던 휘트니 휴스턴의 삶을, 노래를 마음껏 표현하고 있다.
기자는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LG아트센터 VIP룸에서 양파와 만났다. 오랜 공백 끝에 대중 앞에 서기까지,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 양파로서의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첫 뮤지컬 데뷔다.
"음반 작업은 단독 작업인데 뮤지컬은 협동 작업이다. 이 세계에 들어오기 전까진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거니까 가수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말 많이 달랐다. 단체 생활을 하기 위해서 군대에 온 것 같은 느낌이더라.(웃음) 입소해서 훈련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첫 공연을 올렸을 때 미숙한 부분들을 내보여도 될지 걱정이 컸다. 솔직히 더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잘한 것 같다. 정신을 차릴 때 쯤이면 1막이 끝나더라."
-2003년에도 뮤지컬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뮤지컬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했다기보다 휘트니 휴스턴이기 때문에 선택했다. 뮤지컬이란 장르에 대한 두려움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하다. 무대 위에서 노래만 하면 됐던 사람이 춤, 연기까지 노력을 쏟아야 하니까 노래에 들이는 집중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뮤지컬은 정말 다재다능하게 해내야 하는 장르기에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디가드'를 택한 이유는?
"양파가 뮤지컬 배우로 변신했다는 것 보다는 어린 시절에 휘트니 휴스턴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던 내가, 첫 오디션 곡으로 그녀의 노래 'I WILL ALWAYS LOVE YOU'를 불렀던 중학생 이은진이 이런 큰 무대에서 휘트니 휴스턴으로서 살아볼 수 있다는게 매력적이었다."
-자신의 롤모델이기도 했던 휘트니 휴스턴이기에 부담도 컸을텐데
"'발연기'라는 평가만 안 들으면 된다고 마음 먹었다. 사실 자타가 공인하는 몸치다. 조금 위안이 되는건 안무 선생님들도 이번 뮤지컬 속 안무는 아이돌들도 어려워할만한 댄스라고 하셨다. 따라하긴 하는데 모양만 갖추고 있는 거다.(웃음) 다른 사람들이 퇴근해도 난 9시, 10시까지 남아서 연습했다. 또 워낙 저질 체력이고, 연습하면서 너무 말랐단 소릴 많이 들었다. 내가 연기하는 레이첼 마론은 워낙 강인한 여성이고, 배우가 양감이 있어야 무대 위에서 섹시해보인다. 때문에 체력을 키우기 마음 먹고 엄청 먹었다. 5kg나 쪘다."
-같은 레이첼 마론을 연기하는 정선아, 손승연과의 차별점을 둔 부분은?
"선아는 뮤지컬계에서 워낙 베테랑 배우다. 연기 호흡, 템포 등 모든것이 너무나 완벽한 친구다. 승연이는 젊다보니 워낙 에너지가 넘친다. 노래, 연기, 춤 모두 파워풀하다. 그 와중에 내 담당은 뭘까에 대해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감성 담당'이었다. 난 레이첼 마론 캐릭터에 물리적으로 가장 근접하다. 레이첼은 가수로서 커리어도 있고, 아이가 있는 엄마 나이쯤 되는 여자다. 셋 중에 가장 휘트니 휴스턴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90년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나다. 승연이도 휘트니 휴스턴을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하고 깜짝 놀랄 정도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살았던 뉘앙스가 분명 있다. 90년대에 가장 맞닿아있는 레이첼을 경험하고 싶다면 내 공연을 보면 좋지 않을까."
-뮤지컬 넘버들을 소화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가수 양파로서 노래를 할 때는 스스로 틀에 갇혀서 가는 부분이 있다. '양파의 감성으로 이렇게 불러야지'같은 메뉴얼이 있는 셈이다. 늘 차분하고 슬픈 노래만 불렀기 때문에 내 안에 센 모습이 없더라. 하지만 레이첼 마론은 워낙 자기 주장이 강하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슈퍼스타의 아우라를 가진 인물이다. 때문에 더 두껍고 저음으로, 파워풀하게 부르려고 했다."
-극중 레이첼 마론의 전성기, 그로 인해 생긴 스토커 해프닝 등 공감되는 지점이 많을 것 같다.
"'애송이의 사랑' 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레이첼 마론처럼 따라다니고 살해 위협을 가하는 스토커는 없었지만, 스토커의 편지를 많이 받아봤다. '나는 외계인이다'라고 쓰여있는 허무맹랑한 내용들이었다.(웃음) 편지들을 많이 받았다."
-보디가드 프랭크 파머 역으로 이종혁 박성웅과의 호흡은?
"오빠들을 처음 딱 봤을 때 왜 보디가드 역할로 캐스팅됐는지 너무도 잘 알겠더라.(웃음) 포스와 외모가 보디가드에 저격이더라. 두 분 다 모두 베테랑 연기자고, 오빠여서 기댈 수 있는 점이 참 좋다. 처음에 마음을 많이 썼던 부분이 키스신이었다. 남자친구 아닌 사람과 키스하는게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영상 촬영하는 날이 있었는데, 처음 종혁 오빠와 키스를 제대로 해봤다. 집에 와서 맥주 한 잔 했다. 원래 술 안 먹는데. 하하."
-박성웅과 이종혁, 두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종혁 오빠는 편안하고 귀여운 스타일이다. 반면 성웅 오빠는 상남자다. 연기에도 그런 부분들이 뭍어난다. 성웅 오빠의 프랭크는 좀 더 무뚝뚝한 성격의 정적인 프랭크라면, 종혁 오빠의 프랭크는 조금 더 유머러스한 느낌이 있는 캐주얼한 느낌이다."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옥)주현이와 워낙 친하다. 벌써 그 친구는 뮤지컬 배우로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고 또 워낙 잘해왔다. 조언을 많이 해줬다. 첫 공연 앞두고 문자도 보내주고, 자잘한 팁들을 줬다. 또 주변에서의 반응이 다른 뮤지컬이었으면 '어? 네가 뮤지컬을?'이랬을텐데 휘트니 휴스턴의 '보디가드'라고 하니까 정말 잘 어울린다고들 하더라."
-뮤지컬 배우 이은진으로서 이루고 싶은 바는 무엇인가?
영국 연출가가 얼마 전에 떠났다. 가기 전에 편지를 주고 갔는데 'What a transformation'이라는 문구를 보고 정말 기뻤다. 참 많이 변한 내 모습이 놀랍다고 했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는데, 해내고 있다는데 기쁘고 감사하다. 그토록 좋아했던 휘트니 휴스턴 노래를 다 부르고 있지만, 사실은 무대 뒤에서 정신없이 옷 갈아입고 노래를 어디로 하는지 모르게 하고있다.(웃음) 매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