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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7
yangpaholic 2016.12.24. 07:13

  험난했던 뮤지컬 도전기 "군대 입소한 기분"
  "민폐 안 된다면 또 다른 뮤지컬 출연 기대"


가수 양파가 뮤지컬 '보디가드'를 통해 뮤지컬배우로 첫 발을 내딛었다. ⓒ RBW
"정말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이걸 어떻게 매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났어요. 2~3주 지나서야 '정말 죽었다 생각하고 하자'며 이 상황을 받아들였어요."

연습 첫 날부터 강도 높은 훈련에 혀를 내둘렀다. 오직 목소리 하나만 남기고 모든 걸 바꿔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혹독했다. 생애 첫 뮤지컬 '보디가드'로 무대에 오른 가수 양파(38)의 이야기다.

"군대에 입소해서 훈련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제인 맥머트리 안무가와 함께 아침부터 운동을 시작하는데 난리도 아니었죠. 2시간 피지컬 트레이닝을 받고 나면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요. 그걸 하자마자 15분 쉬고 바로 연기 연습, 그리고 또 노래 연습을 쉼 없이 해야 했어요."

양파는 '보디가드'에서 정선아, 손승연과 함께 휘트니 휴스턴이 연기했던 슈퍼스타 레이첼 마론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전부터 수차례 뮤지컬 출연 제의가 있었음에도 뿌리쳤던 양파가 이 작품을 겁 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휘트니 휴스턴'이었다.

하지만 노래를 잘 하는 것만으로 무대 위 '휘트니 휴스턴'이 될 수는 없었다. "가수로서 노래할 땐 에너지 100%를 노래하는 데만 쏟으면 되지만, 뮤지컬은 에너지를 3등분해서 춤과 연기에 배분해야 해요. 노래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양파는 뮤지컬 '보디가드' 출연 이유로 "휘트니 휴스턴이 100%"라고 강조했다. ⓒ RBW

슬픈 노래만 하던 양파, 비욘세처럼

특히 '보디가드' 속 안무는 춤에 일가견 있는 아이돌 댄서들도 힘들어 할 만큼 난이도가 높다. 한 번도 무대 위에서 격렬한 춤을 추거나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양파에겐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남들보다 2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모든 배우들이 연습을 마치고 퇴근한 후에도 안무 선생님과 함께 밤 9시가 넘는 시간까지 추가 수업을 받아야 했다. 더 나아가 섹시하고 파워풀한 레이첼 마론이 되기 위해 6Kg을 찌웠다.

"안무 선생님 말씀이 '비욘세가 무대에서 얼마나 파워풀한지 생각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춤도 그렇게 춰야 하고, 눈빛도 사납고 강인해야 한다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슈퍼스타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겐 센 언니의 모습이 없었어요. 살을 찌우고 세지고 독해지기 위해서 노력했죠. 그러면서 점점 레이첼의 캐릭터를 만들어간 것 같아요."

길고 험난했던 시간들을 견뎌낸 양파는 지난 16일 마침내 첫 무대에 올랐다. 커튼콜 때 기립박수를 받으며 느낀 짜릿함은 그간의 고통을 보상해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무대 위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돼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행복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무의식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1막이 끝나 있더군요. 더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잘 해낸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뭔가 모습이 갖춰져 보이는 거 같았어요."

양파에게 레이첼 마론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할 정도로 큰 도전이었다. ⓒ RBW

"이걸 10년 했다고? 옥주현 존경스러워"

그러면서 연출가 얼마 전 영국으로 돌아간 연출가 제이프 케이프웰가 떠나기 전 자신에게 전해준 편지 내용을 소개했다. "연출님이 '시작 전과 지금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정말 굉장하다'고 하셨어요. 강도 높은 훈련을 따라와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요. 예전에 히딩크 감독의 강도 높은 체력훈련으로 대표팀이 강해졌잖아요. 그런 기분이 들어서 연출님께 정말 감사해요."

어느덧 가수보다 '뮤지컬 디바' 타이틀이 더 잘 어울리는 옥주현도 양파의 숨은 조력자였다. 늘 "잘 할 거야. 잘 흘러갈거야"라고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고, 무대에 서기 전 먹으면 좋은 음식까지 세세히 챙겨준 옥주현은 불안하기만 했던 양파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었던 버팀목이 돼줬다.

"첫 런을 돌고 나서 연습실에 앉아 있으니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그래서 주현이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어요. '진짜 이걸 10여 년간 해왔다니 정말 존경스럽다'고요."

공연을 본 관객들은 양파가 옥주현 못지않은 뮤지컬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창력에다 춤과 연기도 해낼 수 있다는 걸 입증했기 때문이다. '보디가드' 전까지만 해도 막연한 두려움에 뮤지컬 제의를 뿌리치기만 했던 양파 또한 이젠 뮤지컬배우로서 도전을 기꺼이, 그리고 행복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이번에 제가 너무 춤을 잘 못 춰서 안무 선생님이 힘들어하셨어요. 민폐가 되지 않는다면 너무너무 하고 싶어요. 뮤지컬을 통해서 배우고 얻는 것들이 정말 많아요. 그것들이 결국 앨범 활동이나 콘서트를 할 때도 자양분이 될 거예요."

예전엔 두렵기만 했던 뮤지컬이지만, 이젠 다른 작품에도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 RBW
가장 해보고 싶은 작품으로는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꼽았다. 2005년 초연 당시에도 오디션을 보고 싶었다는 양파는 "만약 이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면 오디션을 보고 싶다"는 욕심을 냈다.

물론 가수 양파의 삶도 계속 된다. 특히 2017년은 '애송이의 사랑'으로 가요계에 혜성 같이 등장한 뒤 20주년이 되는 해인만큼 의미가 남다르다. 그만큼 콘서트와 앨범 활동 등 그동안 못했던 활동들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하다. 뮤지컬 경험이 가수 양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기만 하다.

특히 소속사 문제로 공백기가 많았기에 아쉬움이 많다는 "60살 이후 어떤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며 먼 훗날을 기약했다. 그리고 그 사이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며 꾸준한 활동을 약속했다.

"저는 여전히 노래하는 사람 이은진(양파)이에요. 뮤지컬도 노래하는 것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노래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