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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본명 이은진·28)는 자신을 몽상가라고 소개했다. 현실이 견디기 힘들면 바로 헛된 꿈을 꾸는 버릇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지난 2001년 미국으로 돌연 떠나버린 일. 명목상은 버클리 음대 수학길이었지만, 실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생활들에서 무작정 벗어나고 싶었다.

“당시엔 인간 관계 등으로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지나고 나니 안개낀 듯한 현실로 기억되고 말았지만…”

최근 6년만에 새 앨범을 들고 가요계에 복귀했을 때, 그의 몽상가적 기질은 다시 발휘되는 듯 했다. 타이틀곡 ‘사랑…그게 뭔데’가 온-오프라인 차트 1위 행진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데도, 그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첫 방송 출연 후에 “한번 다시 불렀으면 좋겠다”는 후회의 말도 내뱉고, “아직도 보컬에 자신감이 없다”고 두려움도 내비쳤다. 하지만 앨범 속 그의 목소리는 10년 전 그곳의 음색 보다 더 진하고 슬프게 다가온다. 그는 진보했는데, 그의 몽상이 아직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이다.

“첫 방송에 나갈 때 어디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 다시 들었어요. 오랜만에 나왔는데, 대중은 여전히 나를 아이돌로 취급하는 것 같아 창피하기도 했고, 좋은 시절 다 간 뒤에 제가 설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는 6년 간의 휴식을 장거리 달리기를 위한 준비라며 스스로 격려했다. 그 사이 그는 홍대 클럽이나 비주류 뮤지션의 공연에서 기자와 가끔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 앨범이 언제 나오냐는 질문에 그는 대답 대신 쑥쓰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떨구기 일쑤였다. 그리고 2년 준비끝에 녹음실에 들어가던 첫 날, 양파는 좌절감을 맛봐야했다.

“소리를, 목소리를 못 내겠더라고요. 쉬면서 나름대로 다른 이의 공연도 보고 간간이 OST 앨범에도 참여해 부담없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는데, 갑자기 팬들이 제 머릿속을 스쳐갔어요.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가창력, 그래서 잘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어요.”

양파는 1997년 ‘애송이의 사랑’으로 데뷔했다. 여고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뛰어난 가창력과 털털한 성격 등으로 특히 여자 팬들이 많았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R&B 창법을 처음으로 도입한 가수이기도 했다. 양파는 “당시에 유행하던 팝 발라드가 아닌 새로운 창법으로 부르는 모습에 다들 신기하게 여긴 것 같다”고 회고했다.

몽상가적 기질때문에 6년만의 복귀가 쉽지 않았을텐데, 그는 버클리 음대에서 만난 교수의 말을 듣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교수님이 ‘대다수에게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는 음악인은 행복하다’고 하셨죠. 제가 정말 해야 할 역할인가 싶었어요. 또 이대로 음악을 접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떤 면에서 우후죽순 쏟아지는 발라드 가수들 속에서 이름이 추가된 한 명일지도 모르는 양파. 그래서 더욱 더 현실을 도피하는 몽상가가 되진 않을까. 하지만 염려마시라. 그가 지은 왈츠곡 ‘친절하네요’와 ‘메리 미’를 듣다보면, 팬들이 이제 더이상 그를 몽상가로 내버려두지 않을테니까.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