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파는 최근 지인으로부터 ‘목소리가 물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릇의 형태에 관계없이 그 모양을 따른다는 의미에서다. 이달 초 발매한 신곡 ‘끌림’이 물 같은 보컬을 들려줄 수 있는 시도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애송이의 사랑’처럼 노래할 순 없겠더라고요. 마구 의도해서 창법을 바꾼 건 아니지만 제가 변화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끌림’을 만드는 과정은 “(그동안 발표했던 노래 중) 가장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던 작업”이었다. 양파는 “맨땅에 헤딩”한다는 각오와 “0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면, 언젠가 무언가로라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무언가’가 정량적인 성취가 아니더라도 양파는 좋았다.
가사를 쓰면서 양파는 주변 사람들을 관찰했다. “20대 땐 저 스스로를 들여다봤어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또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가 큰 관심사였죠. 그런데 지금 제게는 제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남았잖아요. 그 분들이 공감하고 좋아해줄만한 노래를 만들고 싶은데, 그러려면 그 사람들이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감동하는지 알아야겠더라고요.”
양파는 타칭 ‘비운의 아이콘’이다. 연이은 소속사와의 분쟁 때문이다. 한 때 불운의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으려 했다는 양파는 그러나 최근 인터뷰에서 지난 공백기를 ‘업무 태만’이라고 지적한 취재진에게 크게 공감했다.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업무태만이라는 말이 정말 확실한 것 같아요.”
그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쌓은 게 늘수록 한 걸음 떼기가 어렵고 무거웠단다. 소속사 없이 혼자서 활동을 해보려고도 했지만 힘에 부쳤다. “투자를 받고 유통을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제가 작은 존재라는 걸 알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꾸 안으로만 숨고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되더라고요.”
다시 나온 세상은 양파를 반겨줬다. 3년 전 MBC ‘나는 가수다’ 출연 당시 소속사가 없었던 그를 위해 PD와 작가가 매니저를 자처했다.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프로그램에 들어갔는데 마지막까지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어요.” 양파는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인터뷰 장소에 모인 취재진을 보고도 “신기하다”면서 “내가 이런 행운과 복을 받아도 되나 싶다”고 했다.
양파는 올해 꾸준히 싱글을 내고 싶다. 매월 혹은 격월로 신곡을 발표하고 그것을 모아 풀 렝스(정규음반)로 안착시키는 것을 하나의 여정으로 보고 숨을 고르고 있다. “회사에서 ‘아이돌 먼저 내보내야 한다’며 제 노래를 미루지 않는 이상, 자주 찾아뵙고 싶어요. 하하하.” 먼 미래의 모습을 자주 상상한다는 그는 “언제나 내가 하고 싶거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꾸준히 사람들 곁에 있고 싶다”고 털어놨다.
“어릴 땐 떠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양파라는 페르소나가 세상에 나온 이상, 이 친구의 이야기를 잘 써서 마무리 짓는 것이 제 의무처럼 느껴져요. 물론 지금도 제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고 (팬들의) 사랑에 의해 살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저 스스로 어떤 사람으로 살지 결정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발라드 장르의 곡을 주로 부른 탓에 양파는 늘 드레스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그는 “내 꿈은 그것과 다르다”며 웃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양 팔을 넓게 벌린 채 가창력을 뽐내면서 노래하는 모습, 그게 양파에 대한 이미지죠. 하지만 전 제 얘기로 멋진 노래를 만드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양파는 그것을 “죽을 때까지 놓을 수 없는 꿈”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 든 여자는 고상한 옷을 입고 우아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반짝이 구두를 신고 싶어 할 거예요. 저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계속 변화하고 싶어요. 남들은 똑같다고 말할지 몰라도 제 안에서는 늘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