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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1에서 이어집니다.
-1990년대 당시에는 아이돌급 인기였다.

““고2 겨울방학 때 데뷔했다. 바쁜 시기는 고3때였다. 시험 준비하며 활동하느라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못 자며 활동했다. 벅차고 늘 지쳐있었다. ‘(가수가) 나랑 맞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그 시절에는 많은 아이돌이 길거리를 걸을 수가 없었다. 고3 교실 복도는 조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후배들 반이랑 제가 있는 반이 가까이 있는 바람에 동급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곤란한 게 많았다.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인지 알기 위해 유학을 다녀왔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가수다>로 가왕까지 올랐을 때 활동을 이어갔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당시 3개월 동안 소속사 없이 활동했다. 고생이 많았다. 잠깐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추신수 선수가 등판할 때 애국가를 불러 달라는 요청 이후 쉬었다.

<나는 가수다> 당시 계약하자는 제의가 많았다. 러브콜도 많았고, 녹음해서 음반을 내자는 분도 많았지만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탈락하면 연락드리겠다고 했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마무리하고는 생각을 가다듬고 쉬었다. ‘쉬고 올게요’하고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못 저은 거다.”
-많은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양파 씨를 떠나지 않는 팬이 있다.

“20년지기 팬 중에는 당시 중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있다가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팬도 있다. 모인 팬들과 친한 친구가 돼서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6-7년 만에 (신곡이) 나와도 저를 욕하거나 버리지 않는다. (갓 팬이 된) 어린 팬도 있다. 좋은 얼굴로 한결같이 기다려준다.”
-팬을 통해 힘을 얻고 위로받을 때가 있다면?

“팬이 자라는 모습을 볼 때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팬이 지금은 취직해서 ‘언니, 너무 힘들어요’ 하는 분도 있다. 팬의 삶에 지금까지 제가 들어가 있다는 게 대단하다. 오랫동안 만나고 응원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제 위로다.”
-가장 행복하게 노래했을 때는 언제인가.

“버클리 재학할 때다. 앨범을 내야 한다는 중압감 없이 재미있게 깔깔거리며 노래한 거 같다. <나는 가수다> 때도 행복했다. 그 직전까지 내 목소리가 지겹고 지루했다. 가수는 목소리가 무기다. 자기 목소리를 싫어하면 가수를 못 한다.

제 목소리가 싫어서 계약하자고 해도 자신이 없었다. <나는 가수다>에서는 부르고 싶은 노래를 제 식대로 부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저의 소리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가수로 노래하는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음악적인 행보를 걷고 싶은가.

“새로운 음악으로 교류하면서 저만의 성에 갇힌 게 아니라 밖으로 나와서 용기 있게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 지금껏 발표한 노래보다 앞으로 발표할 노래가 많았으면 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음악을 한다’는 말을 어릴 적에는 실감하지 못했다. 나이 들어서 실감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