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 하면 군대 다녀오신 분들에게 욕먹을지는 모르겠지만 군대에서 훈련 받는 기분이 이런 게 아닐까요? 눈만 뜨면 연습에, 또 연습. 악몽을 꾸기도 했어요.”
가수 양파가 뮤지컬 ‘보디가드’ 무대에 올랐다. ‘보디가드’는 명가수 고 휘트니 휴스턴이 직접 주연을 맡은 동명 영화(1992)로 유명하다. 양파도 휘트니 휴스턴이 맡았던 ‘레이첼 마론’ 역을 맡았다.
○ 혹독한 안무 연습에 하차 생각도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였던 고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양파는 ‘보디가드’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혹독한 과정을 거치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평생 해보지 않았던 안무 연습에 선생님의 눈치를 찔끔찔끔 보게 됐고, “이렇게 하면 안 돼”라는 말이나 면전에서 야단을 맞아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연습한 지 3주 만에 하차 할 생각도 했다.
“자타공인 ‘몸치’예요.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춤이 많은지 물어봤는데 손짓, 몸짓 정도라고 해서 들어왔어요. 사실 휘트니 휴스턴 노래 대부분이 안무가 별로 없어서 걱정을 안했는데 막상 연습에 들어가니 이게 웬일. 아이돌 가수 뺨치는 무대더라고요. 원래 뮤지컬 무대에 섰던 배우들도 고난도 안무라며 혀를 내둘렀죠. ‘아차’ 싶었어요.”
‘보디가드’를 시작하며 양파의 삶은 이러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배우들과 함께 연습을 했다. 스쿼트, 마운틴 클라이밍, 팔 벌려 뛰기 등으로 워밍업 운동을 하고 난 뒤 각 방을 돌며 안무, 노래, 연기 수업을 받았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은 5~10분. 게다가 몸이 너무 말랐다며 체중을 늘리라는 말에 한 끼에 밥을 두 그릇씩 먹어 5kg를 찌웠다. 배우들과 연습이 끝나면 남아서 일명 ‘나머지 공부’를 했다. 집에 돌아오면 무조건 침대로 직행했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대략 두 달을 이렇게 지냈다.
양파는 “어쩜, 대사는 마르고 닳도록 외우는 데 안 외워지고 안무는 계속해서 틀리는지”라며 “안무 연습 시간이 오는 게 그렇게 싫었다. 나중엔 선생님을 나도 모르게 피해 다녔는데 스스로 ‘루저(Loser)’가 된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연습한 지 3주가 지나고 ‘내가 너무 못하면 남들에게도 너무 민폐가 아닌가’라는 생각에 하차 고민도 했다. 하지만 버텼다. 특히 연출가(박소영 협력 연출)는 양파에게 “넌 ○○정신이 필요해!”라고도 하며 그를 강하게(?) 훈련시켰다.
“눈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연습했다”고 했던 양파의 노력은 빛났다. 그는 “연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며 “리허설을 하는데 저절로 동작이 나오고 대사를 했다. 이젠 웨이브도 된다”라며 나름의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에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이번이 첫 뮤지컬이지만 수준급의 실력을 보이며 호평을 받고 있는 것.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그냥 예전에 알던 양파가 뮤지컬을 한다고 하니 ‘참 기특하네’라는 생각을 하시는 건지, 아니면 정말 잘 해서 좋아해주시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일 다행인 것은 ‘발연기’한다는 소리는 아직까지 듣지 않았다는 거예요.(웃음)”
○ 가수가 되기 위해 부른 ‘I Will Always Love You’, 여기서도 부를 줄이야
앞서 말했듯, 가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도전한다는 의미보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디가드’를 선택했다. 실제로 양파는 가수가 되기 위해 오디션에서 ‘I Will Always Love You(아이 윌 얼웨이즈 러브 유)’를 부르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보디가드’ OST를 처음 듣고 나도 저런 가수가 되고 싶다고 꿈을 꿨어요. 어쩌면 그 나이에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게 했던 사람이에요. 노래 잘하는 여가수가 많지만 휘트니 휴스턴과 같은 에너지나 재능, 그리고 시대를 거슬러도 진가를 발휘할 가수는 많지 않을 거예요.”
그의 수많은 노래를 좋아하지만 이번 뮤지컬을 하면서 ‘one moment in time)(원 모멘트 인 타임’을 좋아하게 됐다고. 고통과 한계를 극복하자는 내용을 담은 가사가 자신이 겪어온 인생에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양파는 “이 노래를 부르면 그 동안 가수 생활을 하며 겪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것 같다”라며 감정이 이입이 잘 된다고 말했다.
○ 10년 전엔 생각지도 않았던 뮤지컬, 조금만 더 일찍 했더라면
올해 ‘보디가드’로 뮤지컬에 도전했지만 양파는 뮤지컬 업계에서 꾸준히 캐스팅 제안을 받기도 했다. 13년 전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가 ‘지킬 앤 하이드’를 하자고도 했다. 하지만 이 장르에 매력을 특별히 느끼지 못했던 터라 거절했던 것. 공연 관람도 배우 옥주현, 남경주와 같은 지인들의 초대로 가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양파는 “만약 예전부터 뮤지컬을 시작했더라면 자신의 인생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뮤지컬이라는 게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는 단순한 게 아니었어요.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보는 것도 있고, 하나의 공연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열정과 노력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예전에는 실수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두려운 게 있으면 하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실수하면서 배우고 성장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또 여태껏 무대에서 혼자 있고, 예쁘게 보이려고 샐러드만 먹으며 다이어트를 하던 제 모습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어요.”
뮤지컬로 몸과 마음이 조금이나마 단련된 양파는 “연기가 특히 재미있었다”며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새로운 뮤지컬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제가 2000년에 영국에서 ‘미스사이공’을 봤는데 정말 좋았어요. 한국에서 공연을 한다면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우선 ‘보디가드’부터 잘 해내고요. 앞으로 공연이 28번이 남았는데 점점 발전하는 공연을 만들어야죠.”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