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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의 귀환!’ 6년 만이다. ‘고교생 스타’로 가요계를 종횡무진으로 활약했던 양파는 전속계약에 따른 소송 등의 고초를 극복하고 이렇게 가요팬들 앞에 다시 섰다. 최근 발표된 5집 ‘더 윈도스 오브 마이 솔’은 이미 각종 차트의 정상권을 차자하고 있다. 6년 만에 다시 선 무대를 통해서도 국내 가요계를 대표하는 발라드 여왕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뽐내고 있다.

“얼마나 이렇게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고요. 내가 없는 TV를 지켜 보면서 가슴 아팠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요. 지금요? 인생에 수많은 소용돌이가 있었지만 모두 옛 일로 느껴져요. 벼랑 끝에도 서봤던 만큼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을 비우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세도 갖출 수 있게 됐고요.”

1997년 중경고 3학년 재학 시절 가요계에 입문해 ‘애송이의 사랑’이라는 노래로 인기를 거머쥐었던 10년차 가수 양파에게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가장 크게 기억되는 일은 1997년 각종 뉴스를 타고 전해졌던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고교 시절 수차례 전교 1등을 차지했던 양파는 정작 수능시험 당일 급성맹장염과 위경련 등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부담감 때문에 일부러 그랬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내 몸에 난 맹장수술 자국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어린 마음에 사람들의 시선은 참으로 힘겨운 것이었어요. 이후로는 집 밖에도 못 나섰고, 우울증으로도 고생했죠.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했기도 했고요.”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는 듯했다. 오히려 양파는 이듬해 버클리 음대의 합격증을 받아들고 정작 하고 싶었던 음악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미국으로 훌쩍 떠나 자유인의 삶을 살았죠. 그때 조금씩 저를 추슬렀고요, 고교생 때 즐기지 못했던 학생으로서의 신분도 맘껏 즐겼죠. 남자친구도 사귀어봤고요.”

양파는 전 매니저이자 이모부 서모씨로부터 전속계약 문제로도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양파는 당시를 “최고의 암흑기”로 묘사했다. “전속계약 소송으로 저는 누구와도 음반을 만들 수 없는 처지가 됐다”고 회상하면서 “심장이 18층에서 1층으로 ‘뚝’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아느냐”고 반문했다.

양파는 천만다행으로 지난해 10월 법원으로부터 ‘전속계약이 해지됐다’는 최종 선고 판결을 받아들고 오랜 속앓이를 떨쳐낼 수가 있었다.

모든 난관을 헤쳐나온 양파는 새로운 이름으로 가요 무대를 밟으려는 생각도 했다. ‘다마내기’라며 그렇게 놀려댔던 어린 팬들에서 벗어나고, 그동안 있었던 좋지 않은 사연들을 모두 땅에 묻고 싶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때 활동명을 ‘이은’으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에요. 그래도 쉽게 바꿀 수는 없더라고요. 피하는 느낌도 들고요. 사람들이 좋아해 준 이름, 그리고 내 음악을 당분간은 그대로 잇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싶었습니다.”

컴백이 확정됐던 지난해 양파는 말 그대로 ‘지하세계’를 접수하는 1년여를 보냈다. 지하실 녹음실에 파묻혀 팬들에게 들려줄 음악을 하나둘씩 녹음해갔다.

타이틀곡은 유명 작곡가 박근태의 ‘사랑…그게 뭔데’다. 캐논 변주곡을 바탕으로 한 멜로디에 양파의 호소력 짙은 음색이 더해지면서 팬들을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김도훈 작곡가의 ‘러브레터’, 황성제 작곡가의 ‘울지 않는 법’, 김진환 작곡가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도 고른 인기를 얻고 있다. 앨범 수록곡 중 ‘메리 미’, ‘친절하네요’ 등 양파가 직접 만든 노래는 버클리 음대 재학 시절 배운 자신의 작곡 솜씨를 뽐낸 곡이다.

“이제 무대를 안 내려오려고요. 늘 제 곁에서 머물러주고 또 새 음악을 맘껏 즐겨주시는 팬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지요.”

양파의 귀환, 이렇다 할 라이브형 여가수가 없던 가요계에 샘물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글 강수진·사진 이석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