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로 데뷔한 가수들의 ‘성인식’은 각양각색이다.
지난해 박지윤이 온 몸을 쓰다듬는 춤사위로 ‘성인식’ 신고를 했다면, 2주일 전에 4집 ‘퍼퓸(Perfume)’을 내고 2년여 만에 복귀한 양파(본명 이은진·22·미국 버클리 음대 퍼포먼스과 1년 휴학)는 ‘내적 성장’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20만여장의 판매고를 올린 4집의 타이틀곡 ‘스페셜 나잇(Special Night)’만 들어도 ‘가수’ 양파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머라이어 캐리 류의 ‘꺾기’ 등 다소 억지스러운 리듬앤블루스(R&B) 기교를 벗어나 한 옥타브는 낮춘 부담없는 성역(聲域)에 때로는 내레이션에 가까운 속삭임을, 때로는 잔뜩 품었던 에너지를 터뜨린다.
발라드와 R&B 뿐이었던 장르도 이전에 비해 풍성해졌다. 수록곡 가운데‘고백’은 잔잔한 중간 빠르기에 ‘브릿 팝’의 흐느적거림을 끼얹어 이전의 양파를 기억하기도 힘든 보컬을 선보인다. ‘드라이브(Drive)’ ‘본능’ 등에서 보여준 다소 억센 듯 튕길듯한 펑키함은 ‘어린 날의 치기’로만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무난하다.
버클리 음대의 힘일까. 정작 양파는 “1년 동안 배우면 얼마나 배우겠느냐”고 반문한다. “정신없이 스케줄 쫓아다니는 대신 전세계에서 온 뮤지션 지망생과 수다떨고, 근처의 미술관 가고 영화 보고…. 그러다보니비었던 나를 채울 자신감이 생겼어요.”
주변에선 이전보다 예뻐지고 몸매도 잡혔다지만, 직접 보니 젖살이 쏙 빠진 것 외에는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98년 대학입시 도중 복통을 호소하며 중도에 시험을 포기한 이후 지난해 버클리 음대로 떠나기 전까지, 양파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진로를 앞두고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버클리 음대 진학도 가수를 해야할지 여부를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죠. 다음 학기부터는 전공을 영화음악으로 바꾸고 나중에는 대학을 옮겨 심리학 공부하려구요. 사실 ‘전방위 문화가’가 꿈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요즘 양파의 벤치마킹 대상은 영화 ‘어둠 속의 댄서’의 여주인공인 아이슬랜드 출신 팝가수 비욕. “가수로 그치지않고 라스 폰 트리에같은 거장 감독에게 영감을 주면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아티스트”라는 게 이유다.
7월까지 활동하고 다시 미국으로 가서 복학할 계획. 같은 학교에 유학 중인 다른 가수들의 근황을 물었더니 “가장 친한 ‘전람회’ 출신 (김)동율 오빠는 교수되려는 지 허구한 날 연습실에서 두문불출이고, 조PD는 사는 동네가 달라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