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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추억에 제가 있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지만, 추억 속에 머물러만 있는 것이 아쉬울 때가 많아요. 자꾸만 ‘너 그동안 뭐했어?’라고 물어보는 것 같아서 찔리더라고요”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 폭풍 가창력 등 양파를 대표하는 여러 수식어와 함께 빼놓지 않고 등장한 것이 바로 ‘긴 공백기’다. 소속사와의 긴 분쟁으로 인해 오랜 시간을 쉬어야 할 때도 있었고, 채 정리되지 않은 양파의 어지러운 마음 탓에 휴식을 갖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고 보니 어느새 데뷔 20년차 가수가 돼 있었다. 6년 만에 신곡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하면서 많은 감정들이 뒤섞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0년차 가수라는 말이 부담스럽다고 늘 말한다. 20년을 오롯이 음악에 집중해서 생산하고 활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다. 이렇게 긴 공백기 끝에 앨범을 발표해도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지금까지도 계속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아무 일 아니었다는 듯 담담하게 말하는 양파지만, 긴 공백을 지나오는 동안 수많은 상처가 아로새겨졌다. 그렇게 서른다섯이 지났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려놓음을 알게 되면서 양파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10대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열심히 살았다면, 20대는 끝없는 방황의 시기였다. 그로 인해 30대도 우왕좌왕하며 보냈다. 그러다 30대 중반이 지나면서 내 그릇에 대한 크기를 인정하게 된 것 같다. 내가 바라는 모습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지금은 나는 무엇을 가진 사람인지, 양파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집중하려 하고 있다”
그런 심리적인 변화를 겪고 난 이후의 앨범인 만큼, 양파에게 이번 앨범의 의미는 남다르다. 허송세월에 대한 벌충을 하듯 40대를 30대라고 생각하며 살 생각이라는 각오처럼, 양파는 이번 앨범을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출발점이라 여기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8일 발표한 신곡 ‘끌림’은 이전까지 선보였던 양파 곡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신곡 ‘끌림’은 양파의 현 소속사 대표이자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곡가 김도훈과 양파가 직접 손을 잡고 만든 브리티시 발라드곡으로, 곡 분위기부터 창법까지 이전보다 한층 트렌디 함이 더해진 느낌이다.

“꼭 요즘 트렌드에 맞추려 했던 것은 아니다. 기존 양파의 곡들이 기승전결이 뚜렷한 정통 발라드라면 이 곡은 짙은 감성을 토로하기보다는 편안하게 계속 젖어드는 감성의 곡이다. 사실 원래의 양파 스타일 곡을 보여드려야 좋아해주지 않으실까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너무 예상대로 가면 재미없을 것 같았고, 이 곡이 호응도 가장 좋았다. 창법 역시 감정을 크게 터트리지 않게 조절하면서, 담담하게 부르려했다. ‘누구 목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의도했다”

여기에 양파는 ‘끌림’ 작사에까지 참여하며 진정성을 높였다. ‘그리운 사람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설렘, 익숙한 끌림과 그럼에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다시 만난 연인들의 떨림’을 일상어를 빌려 가사로 녹여냈다.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제 얘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어떤 노래를 해야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제 나이와 일상을 들여다봤다. 사람들 일상은 다 거기서 거기더라. 하루하루 너무 바쁘게 일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외롭게 잠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설레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았고, 거기서 발단이 돼서 요즘 사람들의 사랑의 모양을 일상 언어로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물론 이는 작곡가 김도훈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한 기획사를 이끌고 나가는 리더로서의 판단력과 함께 10년 이상 양파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음악 동료로서의 신뢰는 양파에게 큰 힘이 됐다.

“(김)도훈 오빠와의 작업이 늘 감사한 것은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이번에도 앨범 나오기 전까지 믹스를 몇 번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콘텐츠를 만듦에 있어서도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써주신다. 사실 대표로서 그러기가 쉽지 않을 텐데, 명령보다는 저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고 들어주신다”
책가방을 메고 왔던 팬클럽 회원들이 그 안에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될 만큼, 오랜 시간을 가수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양파는 후배 여자 가수들에게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은 그러지 못했기에 후배들만큼은 자신처럼 먼 길을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애정어린 이야기였다.

“결국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면 남들이 해주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더라.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아직 자신을 다 파악하지 못했다. 까면 깔수록 자꾸 다른 모양이 나오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 우왕좌왕 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지지 않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선배 가수 윤종신이 ‘월간 윤종신’으로 매달 음원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양파 역시 ‘끌림’을 시작으로 쉬지 않고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겠다는 각오다. 이 활동으로 인해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히트곡들을 현재로 데려오고 싶다는 바람도 갖고 있다. 양파에게 당장의 성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꾸준하게 쌓아나갈 수 있는 자신의 목소리다.

“20대가 너무 오래 움츠렸던 시기였다. 가수로서도 놀았지만 인간으로서도 놀았다. 많이 괴로웠다. 이제 40대가 되는 만큼, 앞으로는 계속 싱글을 발표하면서 열심히 살 생각이다. 처음 ‘월간 윤종신’을 보고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애써 만든 노래들을 버리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은데, 이 시스템을 통해서 노래에 대한 예의도 지킬 수 있는 것 같다. 저 역시 음악을 지속적으로 낼 생각이다. ‘끌림’이 그 첫 걸음이다. 다음에는 어떤 스타일의 노래가 나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흘러가 보려 한다”

/서경스타 이하나기자 sestar@sedaily.com